화이트크리스마스가 악몽이 된 것은 짧은 순간이었다. 아파트 화재로 인해 이제 막 32살이 된 아빠는 7개월 딸을 이불로 감싸 안은 뒤 지상에서 뛰어내려 숨졌고, 딸은 무사했다.
2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박모(32) 씨의 빈소가 차려졌다. 서울 한 대학 약학과 출신인 박 씨는 재작년부터 약사로 일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.
박 씨와 같은 대학교 동문인 약사 A씨는 “그는 대학 시절 학과 대표와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자상한 선배였다”고 전했다. 그러면서 “평소 후배들이 무척 아끼고 따랐다. 동문들 모두 박 씨의 부고를 접하고 믿을 수가 없어 슬픔과 충격에 잠겼다”고도 말했다.
크리스마스의 비극은 성탄절이었던 25일 4층 주민이었던 박 씨는 3층에서 난 불이 빠르게 위층으로 번지자 아파트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대피를 위해 가져다 놓은 재활용 포대 위로 2세 딸을 던지고 7개월짜리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.
특히 둘째 딸을 이불에 싸 안고 발코니에서 뛰어내릴 때, 박 씨는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고 결국 심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.
박 씨의 부검 결과 사인은 ‘추락사’로 추정됐으며, 경찰은 박 씨가 4층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받은 둔력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.
박 씨 부부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다가 6개월 전 더 넓은 집에 가고자 이곳에 전세를 얻어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.
한편 경찰은 이날 소방당국과 한국전기안전공사와 합동감식을 진행했으며, 불이 처음으로 발생한 곳으로 추정되는 301호 작은방에서는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.